▲라은성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1.1.2. 파비안


지난 주간 내내 순교자들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던 성민은 자신의 신앙을 새롭게 정립해야만 하겠다고 다짐했다. 주일에 교회에 가서도 말씀을 들으면서도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모든 말씀이 자신을 향하여 말씀하시는 것으로 여겨져 부끄러워 숨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예배를 마쳤지만 예배당 이층에 올라가서 구석에 앉았다. 울면서 기도하고 정말 어떤 시련에도 이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구했다. 눈물을 닦아도 흐르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마음으로 다짐한다. 이제부터 다시금 신앙생활을 정립하기 위해 공예배는 물론 이거니와 새벽기도회도 빠지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얼마동안 갈지 모르겠지만 그 동안이라도 최선을 다해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토요일이 기다려졌다. 이번에는 어떤 말씀으로 들려줄지 기대에 찬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금 수업이 시작된다.

▲로마감독 파비안
“안녕하십니까? 지난 시간에는 로마제국 황제 데시우스 시기에 핍박을 받았던 분들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오늘 계속하여 순교했던 두어 분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분은 파비안의 순교, 다른 분은 키프리안과 오리겐입니다. 모두 세 분은 당시 교회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럼 먼저 파비안에 관해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은 흑판에 ‘파비안’(Fabian, d. 250)이란 이름을 크게 쓰시면서 탁자를 오른 손으로 붙잡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파비안에 관해 우리들에게 시작하셨다.

▲칼리스투스 카타콤
“236년 로마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새로운 감독을 선출하려고 옹기종기 모여 웅성거렸습니다. 당시 파비안은 평범한 시민으로서 로마 시의 대의원이었습니다. 감독이 세상을 떠나자 모두들 누구를 선출할지 모르며 서로들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파비안도 새로운 감독이 누가 될 것인지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 광장에 시민들의 틈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흰 비둘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파비안의 머리 위해 앉았다. 흰 비둘기가 그의 머리 위에 앉는 것을 보고 시민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파비안을 감독으로 추앙해야한다고 환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파비안을 선택하셨습니다. 성령을 상징하는 흰 비둘기가 그의 머리 위에 앉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파비안을 감독으로! 파비안을 감독으로!’ 하며 군중들은 파비안을 중심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파비안은 새로운 로마감독이 된 파비안은 14년 동안 감독직을 성실하게 수행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카타콤을 복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제국 황제 데시우스는 분명한 혐의도 묻지 않고 기독교를 지도하는 지도자라는 이유만으로 파비안을 참수형 시켰습니다. 당시대의 인물 카르타고 감독 키프리안은 그를 가리켜 ‘견줄 데 없는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시신은 칼리스투스 카타콤에 묻혔습니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다시피 그들은 로마감독을 ‘교황’이라 칭합니다. 사진의 복장은 교황의 복장입니다. 앞으로 교황 레오 1세, 니콜라스 1세, 그리고 그레고리 1세 등등에 의해 로마 카톨릭이란 종교가 새롭게 만들어지게 되는데, 즉 중세교회사 시작하는데, 그 때 보다 자세하게 이 문제는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로마 카톨릭이 만들어졌다!”라는 말이 성민의 마음에서 왠지 떠나지 않았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개신교’(프로테스탄트)가 로마 카톨릭의 ‘사촌’이니 아니면 로마 카톨릭의 ‘분파’라는 말들을 하고 있는데 오늘 교수님의 말씀은 성민의 마음에 잘 박힌 못처럼 새겨졌다. ‘로마 카톨릭은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벌써 교수님은 다음 주제를 시작하고 있으셨다.

1.1.3. 오리겐

▲오리겐의 모습
“오리겐에 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은 중요한 인물입니다. 신학적인 면에서, 순교적인 면에서, 교회적인 면에서 등등 많은 분야에서 교회사에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끼친 인물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황제 데시우스와의 관계에서만 언급하도록 하고, 추후에 다시 다음 시간에 이뤄질 강의에서 ‘교부들’이란 주제를 다룰 때 그의 생애와 사상들을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은 조금 침묵을 지키시더니 다시금 입문을 조용히 여신다.
▲황제 세베루스가 새겨진 동전
“으음. ‘오리겐!’ 그러니까 오리겐은 약 185년 태어난 자입니다. 위대한 기독교인이며 저자이면서 동시에 이단자로 정죄 받은 자입니다. 흥미 있죠? 위대한 인물... 그런데 이단자라... 허허. 정말 흥미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자 한 학우가 질문한다. “교수님!” “예, 말씀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저는 오리겐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하는데요... 그는 언제 이단자로 정죄를 받았는지 궁금하네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모습
“예, 좋은 질문입니다. 그가 죽은 후, 553년 5차 범종교회의에서 정죄를 받게 됩니다. 매우 궁금하시죠? 기다리는 것도 미덕입니다. 아니 제 말은 초대교회의 ‘4대 주제’에서 마지막 주제인 ‘이단들’을 설명할 때 신학 논쟁을 다룰 것입니다. 그 때에 보다 자세하게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리겐은 당시에 매우 학식이 뛰어나신 인물이셨습니다. 그의 부친 레오니다스는 로마제국 황제 세베루스(193-211) 핍박 하에 순교하신 분입니다. 부친을 따라 순교를 하려고 했지만 모친의 만류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던 열정적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부친으로부터 기독교 문학을 배웠기에 진지한 학문의 자세를 늘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승 클레멘트에게서 많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진지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많은 저서들을 남긴 기독교 저자들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황제 칼라칼라가 새겨진 동전
“18세에 그는 스승 클레멘트가 교장으로 있는 ‘교리문답 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철학과 영지주의에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방법으로 철학을 배우기를 원했습니다. 더욱이 거세하며 맨발로 지냈던 금욕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 ‘극단적인 의미에서 볼 때, 하늘나라를 위해 내시들을 만든 내시들이 있었습니다. 구세주의 말씀을 온전히 성취하고 싶어 또 복잡한 스캔들에 연류 되기를 원치 않아서 그는 젊었지만 여인들만 아니라 남성들과 신적인 연구들을 마음껏 하고 싶었습니다.’라고 교회 역사가인 유세비우스는 말하고 있습니다(VI, VIII.1)”

“황제 칼라칼라 (198-217)가 알렉산드리아를 공격하여 알렉산드리아에 전쟁이 발발하자, 216년 팔레스타인으로 가서 가이사리아에 거했습니다. 평신도인 자가 사제가 되거나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를 되돌아오라고 강권했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감독들은 평신도들에게도 설교권을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다시금 알렉산드리아로 오리겐은 되돌아왔습니다. 또 228년 그리스에 가서 그는 이단성 있는 사상을 많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230년 알렉산드리아로 되돌아왔을 때 감독 데메트리우스는 그를 매우 꾸짖었습니다. 그래서 231년 종교회의를 열어 그의 교사직의 부당성을 천명하고 알렉산드리아로부터 추방시켰습니다. 그리고 종교회의는 그의 죄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1) 그는 영혼들이 육체 전에 창조되었다는 영혼선재설을 믿었고, 자신이 범한 이전의 죄들로 인해 육체에 거하게 되었다. 세상은 정결케 하는 장소이라고 했다.
2) 그리스도의 영혼은 성육신 전에 존재했고 신성과 결합했다.
3) 사탄을 포함한 모든 창조는 하나님 안에서 그 기원을 둘 수 있다.

▲고문을 당하는 오리겐
“추방당한 그는 가이사리아로 거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다가 249년 황제 데시우스 시기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두로에서 검거되어 잔인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그런 후 석방되었습니다. 그곳에서 254년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순교에 관한 글을 남겼습니다. 그것에 일부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리겐은 로마제국 황제 막시미누스 시기에, 즉 235년에 『순교에 관한 권면』을 팔레스타인의 카이사리아에서 썼습니다. 그 글을 암브로스와 감독 프로토코티우스에게 헌사 했습니다. 순교자 안디옥의 익나티우스처럼 순교를 열망했던 인물이었죠. 단지 자신의 신앙을 나타내려는 열망 때문이 아니라 고문으로 인해 고통을 받을 때 사탄의 권세를 파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지요(고린도 전서 15:55를 보시지요). 순교는 부활을 일으킵니다. 그가 말하는 순교에 대한 개념을 몇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오리겐은 그리스도, 즉 순교자들의 주님께서 신자들의 삶에서 사역하시는 참된 순교자이심을 믿습니다. 순교의 시기에 살았던 그는 그리스도께서 순교할 것을 요구하셨다고 보면서 승리의 면류관을 쓸 수 있는 기회로 보았습니다. 2. 순교는 하나님과 연합하고자 열망하는 참된 기독교인을 증명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를 위해 애매히 고난을 받고 욕을 당한 자들을 위해 하늘에서 큰 상을 받기 위해 경기장에 임하는 당신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자 때문에 즐거움에 참여한 것을 기쁘게 여깁니다(마태 5:10-12, 누가 6:23). 이는 사도들이 그분의 이름을 위해 불명예를 당하면서 고통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사도5:41). 만일 당신들이 영혼을 되찾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깊이 새기시기를 바랍니다(빌립 2:5). 그러면 이런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편 42:11). 당신들이 요동치 않기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환난 가운데서 무서운 칼날이 우리 목에 놓여도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여러분들을 지키시기를 바랍니다(빌립 4:7). 그리고 모든 이들의 주님과 함께 함께 할 것을 통해 늘 평안이 있기를 바랍니다(고후 5:8).

“매우 감동적인 표현이지요. 3. 순교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연적이다. 4. 참된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핍박을 받는데 그 핍박은 진실한 사람의 표입니다. 5. 순교는 순결한 죽음으로 우리 구세주께서 선택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귀한 것입니다. 6. 순교를 통해 우리는 사도들의 형제들이 되고 그들과 같은 반열에 서게 됩니다. 7. 순교는 영원한 영광의 길입니다. 8. 순교는 피의 세례입니다. 죄 용서의 근원입니다. 8. 순교를 통해 신자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사가 될 수 있습니다. 10. 초기 기독교인들은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무기, 즉 죽음의 공포를 정복하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오리겐은 순교가 사탄에 반대하는 전투에서 그리스도의 편에 가입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11. 순교는 영적 실재들이 유형적 실재들로 나타나는 궁극적인 표현입니다. 12. 순교는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선의 헌신입니다. 13. 우리 지혜를 부인하면서까지 그분에게 우리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순교를 가장 잘 나타납니다. 이상은 오리겐이 말하는 순교의 개념입니다. 이러한 그의 순교가 신사참배에서 순교하신 신앙의 선배들을 기억나게 합니다. 우리 함께 찬송가 383장을 불러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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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은성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