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동성애 깃발
▲동성애 깃발. ⓒUnsplash
최근에 미국의 기독교 신자들 중 상당수가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한 분석이 크리스천포스트(CP)에 소개됐다.

이 글을 쓴 존 스톤스트리트(John Stonestreet) 목사는 콜슨기독교세계관센터(Colson Center for Christian Worldview)의 회장이며, 신앙과 문화, 신학, 세계관, 교육 및 변증학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다음은 해당 칼럼의 요약.

최근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1%가 동성 간의 ‘결혼’이 합법화돼야 한다고, 64%는 동성애 관계가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수치는 한 세대 전보다 두 배나 증가한 것이다. 동성결혼을 교회에 매주 출석하는 이들 중에서는 41%가 지지하는 반면, 덜 자주 출석하는 이들 중에서는 67%가 지지한다.

어떻게 교회의 많은 사람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불과 수십 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결혼관을 받아들이게 된 것일까?

동성 간의 결합을 ‘결혼’으로 합법화한 시초인 ‘오버거펠 대 호지스’(Obergefell v. Hodges)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있기 훨씬 전에, 결혼의 의미는 이미 약화되고 있었다. 이는 다양한 문화적 요인들 때문었지만, 아마도 피임은 가장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20세기에 ‘피임약’이 발명되고 널리 보급되면서 마침내 결혼, 성, 자녀와 같은 오랫동안 하나로 이해돼 온 연결이 끊겼다. 결혼과 도덕적으로 연결된 성적 관계가 분리되는 유일한 방법은 새 생명의 선하고 자연스러운 결과와 관계가 없어져야만 했다. 그 결과, 혼외 성관계는 오명을 벗게 됐고, 더 나아가 성적 쾌락과 로맨스가 결혼의 본질적 특성인 헌신과 자녀를 대체하게 됐다.

할리우드도 공헌을 했다. 1980년대 최고의 시트콤들은 가족에 초점을 맞췄다. 90년대에는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 ‘프렌즈’(Friends)와 같은 쇼들이 이상화되고, 과도하게 성적이고, 로맨틱하며, 헌신이 없는 세계를 묘사했다. 영화와 쇼들은 시청자들을 테디우스 윌리엄스(Thaddeus Williams) 박사가 말한 ‘자기 숭배(cult of self)’로 이끌었는데, 이는 “당신의 마음을 따르는 것”을 최고의 인생 목표로 제시한다. 이러한 이상에 취한 문화 속에서 동성애자 권리 운동의 어리석고 명백히 거짓된 슬로건인 “사랑은 사랑이다(love is love)”는 완전히 타당해 보였다.

디지털 기술은 불길을 더욱 지폈다. 인터넷, 소셜 미디어, 스마트폰이 결합된 ‘뉴미디어’는 결혼과 성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가속화했다. 작가 사무엘 제임스(Samuel James)가 지적했듯이, 온라인 세계는 사용자를 우주의 중심에 놓고 “환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무한한 자유”를 줬다. 이 힘은 쾌락과 로맨스를 결혼의 중심이 아닌 자아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성과 결혼에 대한 자유주의적 견해를 강화하고 독려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에서 동성 결혼의 합법화는 불가피했다. 2015년의 이 기념비적인 판결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믿고 있던 바를 반영했다. 결혼은 주로 로맨스, 쾌락, 자기실현에 관한 것이다. 자녀는 선택 사항일 뿐이다. 결혼이 본질적으로 출산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왜 결혼을 이성 두 사람에게만 한정하겠는가? 그리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불가피한 다음 단계는 이것이다. (결혼을) 왜 두 사람으로만 제한하는가?

법 또한 교사의 역할을 한다. 합법적인 것이 되면 사회적으로 더욱 용인된다. 오버게펠 판결은 문화적 신념뿐만 아니라 이를 확산시켰다. 이것은 교회 안팎에서 동성애와 동성 ‘결혼’이 점점 더 수용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교회에 신실하게 출석하는 대다수는 여전히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결혼에 대한 기독교적 견해를 고수하지만, 그 수는 줄고 있다.

이는 동일한 주된 요인 때문이다. 많은 미국 기독교인들은 성과 결혼, 자녀 사이의 내재적 연관성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디지털 기술을 다른 문화와 같은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오버거펠 판결 이후 시대에 살고 있으며, 잘못된 결정이 잘못된 생각을 교육하고 있다.

교회가 결혼에 대한 잘못된 견해로 어려움을 겪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 문화의 형편없는 부도덕함 속에서 결혼의 의미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바울은 이러한 우려를 서신에서 다루며, 신자들에게 잘못된 생각을 거부하고, 그 대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촉구했다. 그는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계획에 기초한 결혼관을 호소했다. 결혼 관계는 세상의 구조에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대체되거나 재정의될 수 없다. 사실, 그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와 교회를 가리키는 신성한 신비다. 세상과 교회의 생명을 위해, 기독교인들은 결혼을 계속 신성하게 여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