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법과 안식일법, 준수 힘들어
바울 “이방인, 율법 안 지켜도 돼”
예루살렘 회의 통해 문제 해결해

바울 바나바 루스드라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병자를 고치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 네덜란드 화가 바르톨로메우스 브레인베르흐(Bartholomeus Breenbergh)의 ‘Paul and Barnabas at Lystra(1637)’. ⓒ위키
7. 위기: 마가로 인한 다툼

제1차 전도여행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계획하고, 바나바에게 “1차 전도여행 동안 세워진 교회들을 살펴보러 가자”고 제안합니다. 물론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계획할 수 있었던 것은 “이방인들도 율법을 지켜야 하나?” 하는 중대한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은 이들을 핍박하였으나, 한편으로 ‘경건한 헬라인들’은 이들을 환영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헬라인들에게는 율법이 큰 족쇄였기 때문입니다.

헬라인들이 믿는 올림푸스 신들은 인간들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탐욕스럽고 서로 싸우며 또 성적인 간음도 수시로 범하였습니다.

이런 신들을 믿었던 헬라인들에게, 유대인들이 가져온 유대교의 가르침은 너무나 차원이 다른 종교였습니다.

유대의 ‘여호와 하나님’은 매우 도덕적이지만 사랑이 넘쳤습니다. 또 매우 고매한 성품을 지닌 인격적 존재였으며 동시에 전지전능한 생명의 주인이기도 하였습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이제까지 헬라인들이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초월적 존재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경건한 헬라인들’이라 불리는 이들은 매주 안식일마다 회당에 나와서 유대인들과 함께 하나님 말씀인 타낙(Tanak, 구약성경)을 읽고 기도하기를 즐겼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수 없었던 중대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율법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경외하여 유대교로 개종을 하고 싶어도, 개종 후 이들이 일상생활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은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이런 극심한 고통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음식법과 안식일법이었습니다.

먼저 유대인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레위기 11장).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이나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는 생선 등 먹을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제한적이었습니다. 이는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하던 고대 사회를 생각하면 매우 심각한 문제였고, 더구나 지금까지 주식으로 늘 먹던 음식들을 대부분 포기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법은 사실 더 큰 문제였습니다. 유대 공동체에 모여 살게 되면 그래도 음식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법은 너무 복잡해서, 이에 익숙해 지는 데만 수 년이 걸릴 정도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일을 하면 율법에 따라 죽인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던 이방인들이 안식일법을 최대한 이용하였습니다.

먼저 유대인과 관련된 모든 재판은 안식일에 열렸습니다. 율법에 따라 안식일에는 법원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재판관이나 고소인들이 알았기 때문에, 이들은 늘 안식일을 선택해 재판을 열었습니다. 따라서 아무 죄도 찾아볼 수 없는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이방인과의 재판에서 이긴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또 고대 사회에서 유대인들의 용감성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특히 주어진 임무에 대해서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실천을 하였습니다.
심지어 유대인이 보초를 서면 그 시간에는 절대 적이 침투해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용감하고 주도면밀한 유대인들은 특히 용병을 많이 고용했던 고대 애굽 왕국에서 단연 최고 인기있는 용병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날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안 이방인들은 전쟁도 안식일에 하였습니다. 현대사에서도 그 예가 잘 나타나 있지만 안식일에는 총칼을 들고 싸울 수 없었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공격할 때는 늘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 지키기에 익숙해진 유대인들은 평상시에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를 용감히 하였지만, 안식일만 되면 적이 눈 앞에 나타나도 저항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현실 생활에서 많은 불이익을 주는 음식법과 안식일법으로 인하여, 경건한 헬라인들은 유대교로 개종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즉 개종한다는 것은 모든 경제적·사회적 신분을 포기하고 율법에 따라 산다는 것을 의미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유대교로 개종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대인들과 회당에 모여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어중간한 태도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헬라인들에게 희소식을 가져온 사람이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은 ‘율법의 짐을 이방인들이 함께 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거의 유일한 사도였기 때문에, 바울이 가는 곳마다 경건한 헬라인들은 쌍수를 들어 바울을 환영했던 것입니다.

이 점이 바로 바나바와 바울이 제1차 전도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이었습니다.

버가
▲버가 유적지의 고대 건물.
그런데 이로 인하여 역풍이 생겼습니다. 즉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파 기독교인들이 안디옥 교회와 바울이 세운 교회에 다니면서 할례나 안식일 등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바울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바울이 세웠던 경건한 헬라인 중심의 교회들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고, 바울의 사도적 권위는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만 했으며, 마침내 A.D. 49년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사도들과 “이방인들은 율법의 짐을 질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만들어 내었습니다(사도헹전 15장).

이로 인하여 바울은 이방인들의 사도로서 인정을 받고, 차후 전도 여행을 방해할 수 있는 신학적 장애물을 완전히 제거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따라 바울은 다시 바나바에게 새로운 전도 여행을 제안했습니다.

1차 전도여행 옥의 티, 마가 도망
부잣집 아들, 위험한 여행 힘들어
마가도 진심 회개와 사과 했을 것
바나바 동행 제안에 바울 거절해
고지식했던 바울, 장점이자 단점
결국 갈라서 따로 전도여행 떠나

그러나 성공적으로 끝났던 제1차 전도여행에 있어 ‘옥의 티’는 마가였습니다. 그는 전도여행 중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버린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어리고 또 부잣집 아들로 편한 삶을 살던 마가에게, 모든 것이 불편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조차 한 전도여행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마가의 이러한 태도는 바울의 심기를 거슬렸던 것 같습니다. 바나바는 이런 것들도 너그러이 포용할 수 있는 넓은 그릇의 소유자였지만, 성격이 매우 고지식한 바울은 팀의 사기를 꺾는 행동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 바나바 마가
▲마가 때문에 논쟁하는 바나바와 바울을 표현한 그림. ⓒ위키
이런 성격이 바울을 복음을 위히여 생명을 버릴 수도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지만, 반대로 사도로서 아직은 미숙했기 때문에 한 번 자신의 마음에서 벗어나면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 고집도 만들었던 것입니다.

바나바가 제2차 전도여행에 마가도 함께 데리고 가자고 했을 때, 분명 마가의 의견도 들었을 것입니다. 마가는 비록 어린 나이지만 자신이 잘못 행동하였다는 것을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하고 사과하였을 것입니다.

바나바도 마가의 회개가 진심인 것을 알고 함께 동행하자고 바울에게 제안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가에 대한 바울의 싸늘한 태도는 너무나 완강했습니다.

결국 마가로 인하여 바나바와 바울은 서로 갈라섰습니다.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자신의 고향인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고향에서 가까운 갈라디아 쪽을 거쳐 그리스를 향하여 2차 전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우정을 묵상하면서, 이 부분에 오면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아직 젊은 바울이 자기 혈기를 누르지 못하고 과잉 반응을 보이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바울의 고지식한 성격은 갈라디아서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가짜 교사들의 가르침에 현혹된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질책은 조금도 용서가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이런 기질이 3차 전도여행을 끝마칠 무렵 쓰여진 로마서에서는 많이 누그러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이방인들의 사도로서 성공을 한 자신의 모습에 많은 여유가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구브로 바보
▲오늘날 바보 항구. 이곳에서 바울은 배를 타고 밤빌리아 지역의 버가를 향해 떠났다.
류관석 교수

대한신대 신약신학
서울대 철학과(B.A.), 서강대 언론대학원(M.A.),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M. Div.),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Th. M. 구약 / M. A. 수료), Loyola University Chicago(Ph. D., 신약학)
미국에서 Loyola University Chicago 외 다수 대학 외래 교수
저서 <구약성경 문화 배경사>, <산상강화(마태복음 5-7장)>, <기적의 장(마태복음 8-9장)>